신약정경이 될 수 없는 도마복음(3)
"이 글은 당당뉴스(DangDang News)에 공식 기고된 목사님의 소중한 기록입니다."
- 매체사: 당당뉴스 (The DangDang News)
- 발행일: 2010-11-18
- 필자: 김기천 목사 (Rev. Kee Cheon Kim)
📜 목사님 원고 전문 (Manuscript)
신약정경이 될 수 없는 도마복음(3)
업데이트 2010.11.18 22:10
익투스트래블190423
"신약정경이 될 수 없는 도마복음(3)"
2.4. 인도 북부 개혁 불교
김기천 목사
기원전 3세기경에 “마우랸”(Mauryan) 제국의 왕 “아쇼카”(Asoka, 기원전 273-232)가 불교로 개종함으로 불교는 인도 전 지역에서 세력을 얻게 되었다. 아쇼카 왕이 죽은 후에 마우랸 제국은 분열되었지만, 이후에도 여러 왕조 계승자들은 자신들이 불교도가 아니더라도 불교에 배타적이지 않았으며 기본적으로 불교를 후원하곤 하였다.
아쇼카 왕이 불교로 귀의한 이후 기원전 2세기부터 주후 2세기까지 불교가 인도 내에서 크게 번창하면서 불교 내에서 교단 분열이 일어났다. 이 시대를 “부파불교시대”라고 한다. 특히 당시 그리스 로마 문화와 교류가 빈번했던 인도의 북서지방에서 기존 불교의 가르침에서 탈피하려는 개혁바람이 일어났다. 그것이 바로 대승불교(Mahayana, 大乘佛敎)였다. 이전까지만 해도 불교는 이론에 치우쳐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오랫동안 수행하는 출가 승려만을 위한 소승불교(Hinayana, 小乘佛敎)였다. 혼자만의 깨달음을 목적으로 한 불교였기에 일반 대중은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이에 반발하여 대승불교는 보살(Bodhisattva, 菩薩) 사상을 바탕으로 이타적인 세계관을 발전시켰다. “보살”이란 먼저 깨달음을 얻었지만 그의 대자대비(大慈大悲) 때문에 세상에 머물면서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교화시키는 일을 하는 자를 가리킨다. 예를 들면, 대승불교에서 관세음보살(Avalokitesvara, 觀世音菩薩)은 자신의 부처됨을 연기하기로 맹세하고 어려움에 처한 중생들의 기도를 들어주며 일체 중생들이 열반(Nirvana, 涅槃)에 들어갈 때까지 세상에 남아 중생들을 돕는 보살을 가리킨다. 그래서 대승불교에서는 누구나 다 보살이 되어서 중생들을 깨닫게 하라고 가르친다. 이런 식으로 해서 불교는 많은 부처와 불보살들을 가진 대중종교로 성장하게 되었다. 대승불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성불(成佛)하자는 대중화된 불교인 것이다. 소승불교에 의해 대중에게 닫혀있었던 불교의 문을 대승불교가 열어 개방시킨 것이다.
2.5. 해외로 전파되는 인도 불교
불교는 인도 내에 머무르지 않고 해외로 진출했다. 중국에는 이미 진시황(秦始皇, 기원전 259-210) 때 불교가 들어와 번성하고 있었으며 기원전 213년에 시작된 진시황의 억압으로 불교가 탄압을 받았었다[신문 “차이나 데일리”(China Daily) 2009년 5월 13일자에 따르면, 중국 산시성(陝西省, Shaanxi) 고고학 연구소의 학자인 “한 웨이”(Han Wei)는 “중국 최초로 가장 영향력 있는 역사서인 사기(史記, The Historical Records)에 진시황제가 불교와 불교 사찰들을 심하게 탄압했다고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한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로는 한나라 명황제(漢明帝, 주후 28-75) 때에 불교가 중국에 번성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불경이 처음으로 중국어로 번역된 것은 주후 148년경 즉 후한(後漢) 시대에 불교 포교사로 중국에 들어온 안세고(An Shingao)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안세고는 인도 북서쪽에 있었던 파르티아(Parthia) 제국의 왕자였다가 승려가 되어 불교 포교사로 중국에 들어왔다.
동쪽 끝에 있는 한국에까지 불교가 들어온 것은 주후 3, 4세기경이었다. 고구려는 인도 승려라고도 하고 중국 위나라 승려라고도 하는 순도(順道)에 의해 주후 372년에, 백제는 인도의 고승 마라난타(Marananta)에 의해 주후 382년에, 신라는 고구려 승려 아도(阿道)에 의해 주후 263년에, 불교가 유입되었다고 한다. “어떻게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되기도 전에 고구려 승려가 신라에 불교를 전파했느냐?”란 의문이 제기되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대체로 주후 4세기경에 한국에 불교가 전래되었다는 사실이다.
역사적 자료에 의하면, 인도 불교가 주후 2세기에는 중국에 들어와 번역된 경전을 만들고, 4세기에는 인도와 전혀 국교도 없었던 한국까지 포교사가 들어왔다고 한다. 그런데 기원전 6세기부터 국가로 통합되어 정치 문화적인 교류를 맺고 있었던 로마, 그리스, 아프리카 등에 불교를 포함한 인도 종교가 소개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는가? 『도마복음』이 들어있는 낙하마디 문헌이 만들어지던 주후 4세기에 이집트에 인도 종교인들이 분명히 있었다. 이 사실을 밝히기 전에 먼저 인도 종교에 대한 간략한 이해를 할 필요가 있다.
3. 인도종교 이해
3.1. 힌두 경전 『리그베다』
힌두 종교의 기반은 『베다』경전이다. “베다”(Veda)란 말은 고차원적인 종교 ‘지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인도 아리안들은 힌두 종교의 내용이 수록된 산스크리트어로 된 여러 권의 책들을 만들었다. 이 책들을 『베다』라고 한다. 『베다』의 종류로는 네 개의 수집본(Samhita)이 있는데, 이것들은 『리그베다』(Rg Veda), 『야주르 베다』(Yajur Veda), 『삼마 베다』(Sama Veda), 『아타르바 베다』(Atharva Veda) 등이다. 또한 이 네 개의 경전에 붙어 있는 부록들이 있다. 그것들로는 『브라마나스』(Brahmanas), 『아랑야카』(Aranyaka), 『우파니샤드』(Upanisad) 등이다. 힌두 종교인들은 위에 모든 경전들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계시의 책이라고 믿는다. 『베다』에서 나온 가지들이라는 『베당가』(Vedanga)들은 베다 경전들과 같은 계시의 수준에 들지는 못하지만 넓은 의미로 『베다』경전에 속한다.
『리그베다』는 베다 경전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1,028곡의 노래와 약 10,000 구절로 이루어져 있다. 이 노래들은 수백 년 동안 여러 시인이나 제사장들에 의해 만들어져서, 기원전 1,200-1,000년 어간에 한권의 책으로 수집되었다. 이 수집본은 거의 3,000 년 동안 인도 종교인들에 의해 거의 변경 없이 암송되고 구전으로 전승되어 왔다.
『리그베다』의 노래들은 펀잡(Punjab) 지방에 거주했던 인도 아리안들의 종교적 관심과 사회적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다. 대부분 노래들은 다양한 신들을 찬양하고 있다. 물론 그중에 가장 중요한 신은 의심할 것 없이 활동적이고, 강력하고, 예상할 수 없고, 전투적인 신 “인드라”(Indra)이다. 즉 “인드라”(Indra)는 전쟁 신이었다. 둘째로 중요한 신은 불의 신 “아그니”(Agni)이다. 아그니는 태양 불, 난로 불, 제단 불, 사람 배속에 소화시키는 불, 시인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불 등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또한 아그니는 신들의 제사장이며 또한 인간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제사장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그니는 제사에서 신들과 인간들을 함께 묶을 수 있는 중재자로 역할을 한다.
『리그베다』에서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소마”(Soma)이다. 소마는 제사에 쓰이는 식물이름이며 또한 그 식물을 짜서 낸 즙을 가리키기도 한다. 더욱이 그 식물을 혼합한 음료를 마심으로 생기는 현상들을 인격화한 신이기도 하다. 『리그베다』에 있는 기록을 보면, 이것을 먹으면 정신이 아주 맑아진다고 한다. 그래서 이 음료를 영감, 환상, 계시의 음료라고 부른다. 희생제사 때에 시인들은 소마 주스를 마시고, 그것을 통하여 신들과 연합한다. 소마 음료에 의한 계시들은 단순히 꿈이나 환각으로서가 아니라 정상적인 지각 이상의 더욱 분명한 깨달음을 준다고 한다.
인도 아리안들이 기원전 1200-600년 동안에 인더스 강 유역으로 이주하면서 새로운 도시 문명을 만들어 냈다. 기원전 600년경까지 인도 아리안들은 유목민 생활에서 정착생활을 하는 농경민으로 바뀌어 졌다. 이 시기에 도입된 철기는 갠지스 강 평원에 있던 깊은 밀림 지대를 없애는 데에 사용되었고 또한 농사 경작에 커다란 발전을 가져왔다. 더욱 안정된 인구와 풍부한 식량은 결과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정착시켰다. 인도 아리안 유목민들은 정착하면서 초기 계급사회를 만들기 시작했다. 인도 아리안 민족이 아닌 외부사람들이 노동자로 병합될 경우 이들을 사회적으로 낮은 계급 “수드라”(Sudra)들로 취급했다. 정치적으로도 체계화되면서 초기 왕국 형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들 초기 왕국 탄생과 더불어 무역의 중심지로서 도시들도 생겨났다. 기원전 600년까지 수십 개의 도시들이 북부 인도에 있었다.
이러한 안정된 생활로 인해서 『리그베다』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전에 적들을 패배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희생제사가 이제는 사회와 우주 질서를 유지 또는 안정화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리그베다』의 후기 노래들을 보면 제사 의식이 자세하게 체계화되어 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전에 『리그베다』에서 중요하게 여겼던 신들은 점차 사라져가고 후기 『베다』에서는 희생제사 자체만 가장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다.
제사의식이 강화되면서 제사 업무를 담당하는 계층인 “브라만”(Brahman)들의 역할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리그베다』의 시인들은 베다 노래에서 강력하고 능력 있는 말씀을 “브라만”(Brahman)이라고 했다. 결국 “브라만”은 제사장 즉 사람을 가리키기는 말이기도 하고 말씀을 가리키기는 말이기도 했다. 종교 의식에서 사용하는 예전적인 말씀들이 본래 능력이 있다는 사상은 인도의 여러 종교 학파들이 받아들였다. 그래서 예전적인 말씀들을 노래 부르듯이 운율에 맞추어 주문(呪文)으로 발전시킨 것이 “만트라”(Mantra)이다. 『리그베다』 시인들은 노래를 만들고 암송하는 사람에게도 “브라만”이란 이름을 적용시켜 브라만 계층을 확대시켰다.
초기 브라만 암송자들은 혈통으로 상속되거나 또는 같은 부족 간의 결혼을 하는 그런 사회 계층이 아니었다. 그러나 후기 『베다』경전에 보면, 브라만들이 『베다』를 가르치거나 제사의식을 주관하는 특별한 사회 계층이 되면서 자손에게 상속되었다. 브라만 계급이 사회적으로 공식화된 가장 중요한 최초의 근거는 『리그베다』에 들어있는 찬송집 『푸루샤숙타』(Purusasukta)에서 발견된다. 이 노래에 의하면 네 가지 사회 계급이 “푸루샤”(Purusa)로부터 나오는데, 그의 입으로부터 “브라만”(Brahman) 즉 종교인들이 나오고, 그의 팔로부터 “크샤트리야”(Ksatriya) 즉 용사들이 나오고, 그의 허리로부터 “바이샤”(Vaisya) 즉 상인들이 나오고, 그의 발로부터 “수드라”(Sudra) 즉 종들이 나왔다고 한다. 이 노래는 이 네 종류의 사회계층들이 창조의 순서에 의해서 지위가 구분된다고 가르친다. 결과적으로 브라만은 푸루샤 입에서 나왔기 때문에 최고로 높은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3.2. 힌두 경전 『우파니샤드』
『아랑야카』(Aranyaka)는 문자적으로 “숲속에 있음”이란 의미가 있고, 『우파니샤드』(Upanisad)는 “스승 옆에 앉아 있음”이란 의미가 있다. 이 두 책은 서로 다른 입장에서 희생제사에 기초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이 책들은 세속을 떠나 숲속으로 들어가서 지혜의 스승 옆에 앉아서 은밀하게 대화하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들은 대중을 위한 경전이라기보다는 소수의 제한된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었다. 『우파니샤드』는 후에 ‘베다의 절정’(Vedanta)으로 받아들여졌다. 『브라다랑냐카 우파니샤드』(Brhadaranyaka Upanisad)는 가장 초기 것들 중에 하나이며 가장 영향력 있는 『우파니샤드』이다. 이 책에서 브라만의 스승인 “야즈나발캬”(Yajnavalkya)가 소개된다. 궁정 제사의 결론에서 야즈나발캬는 자신이 베다 문제에 있어서는 현존하는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윤회(transmigration) 사상에 대한 대변인으로 기록된 최초의 인물이다. 윤회에 관한 그의 가르침을 보면, 사람은 죽음을 통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세상으로 영원히 옮겨가는 것도 아니라, 오히려 이 세상으로 되돌아와서 새로운 죽을 운명으로 다시 살다가 죽게 된다. 이런 삶과 죽음과 재탄생을 『우파니샤드』에서 “삼사라”(Samsara, 윤회)라고 말한다. 삼사라는 단지 한 개인의 윤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이 영원토록 같은 윤회의 과정에 속해 있다는 말이다. 『우파니샤드』의 이런 세계관은 낮과 밤, 계절 변화 등에 관심을 두었던 초기 『베다』경전에서 나왔다.
이런 윤회의 가르침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질문을 야기한다. “다음 탄생 때에 모습은 무엇이 결정하는가?” ”영속적인 윤회 외에 다른 것은 없는가?” 첫째 질문에 야즈나발캬는 『베다』경전 안에 있는 “칼마”(Karma, 인연, 業) 개념을 다시 정의 한다. 칼마는 넓은 의미로 ‘행동’을 의미한다. 『베다』경전에서 모든 제의적인 행동들은 때로는 그 당시에 당장 결과가 나타나지 않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열리게 되는 열매(Phala, 결과)를 만들어낸다. 야즈나발캬는 인과관계에 대한 이 개념을 확장시켜서 그것을 도덕적 차원에 적용시켰다. 생전에 사람의 도덕적 행위가 다음 세상에서 다시 태어날 모습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신처럼 행동하면 다음 세상에서 신이 된다. 그러나 신도 역시 영원한 신으로 남는 것이 아니다. 천상의 오랜 향락 생활 후에는 다시 인간으로 태어날 수도 있다.
야즈나발캬는 끝도 없이 돌아가는 윤회 외에 다른 길도 소개한다. 윤회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이것을 ‘해방, 해탈, 구원’이란 의미의 “목샤”(Moksa)라고 부른다. 야즈나발캬에 따르면, 개인이 자신의 욕심, 욕망을 소멸시키면 목샤 즉 해탈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의 욕심, 욕망이 삼사라 즉 윤회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결국 이 세상의 삶을 초월한 상태를 가리키는 목샤는 개인이 노력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목샤 즉 해탈에 관한 가르침은 후기 인도 종교사에서 발전된 모든 『우파니샤드』 사상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된다. 그동안은 『베다』경전이 가르쳐 온 제사 사상을 통해서 사회적이며 집단적인 종교생활을 추구해왔다. 그런데 해탈 사상의 등장으로 인해 개인 스스로 윤회에서 벗어나서 종교의 최고의 경지에 도달하려는 경향이 생겨난 것이다. 다른 면으로 보면, 『베다』경전에 따라 희생제사를 드리는 것은 세상의 현상 유지에 집착하는 것이고, 해탈을 추구하는 것은 그 모든 것들을 포기하는 것으로 서로 완전히 반대가 되는 가르침이다.
이런 상반된 가르침은 인도 종교사 전반에 거처 “세속을 떠난 금욕주의적 출가 생활이냐?” 아니면 “세속 안에서 사회와 조화를 이루는 생활이냐?”란 중요한 문제를 제기했다. 『우파니샤드』의 가르침들은 해탈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높은 수준의 지식을 깨닫기 위해서는 세속을 벗어나는 탈속이나 금욕 생활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해탈이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과의 인연을 점진적으로 끊어야 해탈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출가자”(Sannyasin)는 집과 가족을 떠나서, 상대적으로 고립된 생활을 하며, 가혹한 환경에서 견디며, 땅위에서 자며, 음식을 조절하고, 호흡을 조절하며, 한마디로 세상에 얽매일 수 있는 모든 것을 끊어버려야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런 탈속적인 수행을 『브라다랑냐카 우파니샤드』(Brhadaranyaka Upanisad)와 같은 본문에서 처음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전에 『베다』경전들은 우주와 사회의 질서를 발생시켰던 제사의식들을 제시했다. 이런 제사에 대한 가르침들은 당시 사회질서를 유지하는데 공헌을 해왔다. 브라만과 같은 계급들이 자신들의 권위를 입증하는 정치적 힘으로서 이런 제사의식 가르침들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공동체 중심의 종교생활이 『우파니샤드』에 의해 개인 중심으로 바뀌었다. 『우파니샤드』의 가르침은 사회나 정치 등 세상에 얽매인 모든 것들을 끊어버리는 탈속적인 모델을 제시했다. 이전에 집단적인 성격을 가진 제사의식보다는 개인적으로 엄격한 금욕생활과 깨달음을 통하여 목샤 즉 해탈을 추구하도록 힌두종교의 방향을 바꾸었다.
(발췌: 큐복음 상권 "잃어버린 신화를 찾아서" 289-299페이지)
🏛️ 최고 신학자의 심층 분석 및 현대적 해석
김기천 목사 "신약정경이 될 수 없는 도마복음(3)" 해설 및 분석
1. 핵심 요약
김기천 목사는 도마복음이 신약정경이 될 수 없는 이유를 인도 종교의 맥락에서 설명한다. 그는 아쇼카 왕의 불교 개종 이후 인도 불교가 대승불교로 발전하며 대중화된 점, 그리고 이것이 해외로 전파된 과정을 기술한다. 또한 힌두교의 베다 경전과 우파니샤드 사상이 윤회와 해탈이라는 개념을 통해 개인의 구원을 강조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며, 이러한 인도 종교의 특징이 도마복음의 사상적 배경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2. 신학적 인사이트
김기천 목사의 글은 도마복음이라는 텍스트를 신약성경의 맥락에서 벗어나, 당대의 종교적, 철학적 흐름 속에서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목사님은 도마복음의 기원과 사상적 배경을 밝히기 위해 불교와 힌두교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논지를 전개한다.
2.1. 불교의 대중화와 도마복음
아쇼카 왕의 불교 개종은 인도 역사뿐 아니라 종교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아쇼카 왕의 후원 아래 불교는 인도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이는 불교 내부에 다양한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주목할 점은 대승불교의 등장이다. 목사님은 소승불교가 이론에 치우쳐 일반 대중이 이해하기 어려웠던 반면, 대승불교는 보살 사상을 통해 이타적인 세계관을 발전시키고 대중을 위한 종교로 거듭났다고 설명한다.
이는 도마복음의 특징과 연결될 수 있다. 도마복음은 난해한 예수의 어록들을 담고 있는데, 이는 소수의 지혜로운 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가르침이라는 인상을 준다. 이러한 특징은 대승불교의 보살 사상과 유사하게, 깨달음을 얻은 자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세상에 머물면서 교화시키는 모습과도 연결될 수 있다. 즉, 도마복음은 예수의 가르침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자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재해석한 텍스트일 가능성이 있다.
또한 불교의 해외 전파 과정은 도마복음의 기원을 추적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목사님은 불교가 중국과 한국까지 전파된 사실을 언급하며, 인도 종교가 로마, 그리스, 아프리카 등에도 소개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는 도마복음이 발견된 이집트 낙하마디 지역에 인도 종교인들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며, 도마복음이 인도 종교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2.2. 힌두교의 윤회와 해탈, 그리고 도마복음
목사님은 힌두교의 베다 경전을 통해 힌두교의 기원과 발전을 설명한다. 특히 리그베다의 신들에 대한 찬양과 제사 의식은 힌두교의 초기 형태를 보여준다. 그러나 우파니샤드 사상의 등장으로 힌두교는 개인의 구원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환된다. 윤회와 해탈이라는 개념은 이러한 변화의 핵심이다.
윤회는 인간이 죽음을 통해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사상이다. 그리고 해탈은 이러한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우파니샤드는 개인의 욕심과 욕망을 소멸시키면 해탈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러한 가르침은 세속을 떠난 금욕주의적 출가 생활을 강조하며, 개인의 깨달음을 통해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도마복음은 영생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 자아를 부정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것을 제시한다. 이는 힌두교의 해탈 사상과 유사한 면이 있다. 도마복음에서 예수는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스승의 역할을 하며, 예수를 통해 자아를 부정하고 신과 하나 됨으로써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는 우파니샤드의 스승 옆에 앉아 해탈의 가르침을 듣는 모습과 유사하며, 도마복음이 힌두교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2.3. 역사적, 철학적 맥락에서의 신학적 해석
김기천 목사님의 분석은 단순히 종교적인 관점에서 도마복음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철학적 맥락에서 도마복음을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목사님은 도마복음이 당대의 종교적, 철학적 흐름 속에서 형성된 텍스트임을 강조하며, 도마복음의 기원과 사상적 배경을 밝히기 위해 다양한 종교와 철학 사상을 비교 분석한다.
특히 불교와 힌두교의 사상을 통해 도마복음을 해석하는 방식은 매우 독창적이다. 목사님은 도마복음의 난해한 어록들과 영생에 대한 강조가 불교와 힌두교의 사상과 유사한 면이 있음을 지적하며, 도마복음이 인도 종교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러한 분석은 도마복음을 신약성경의 맥락에서 벗어나, 보다 넓은 종교적, 철학적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한 목사님은 도마복음이 정경으로 인정받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정경의 형성과정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도마복음은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직접적으로 기록한 텍스트가 아니라, 예수의 어록들을 모아놓은 형태이기 때문에 역사적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평가받는다. 또한 도마복음은 영지주의적인 사상을 담고 있는데, 이는 정통 기독교의 교리와는 거리가 멀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도마복음은 신약정경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김기천 목사님의 글은 도마복음에 대한 깊이 있는 신학적 분석을 제공한다. 목사님은 도마복음을 역사적, 철학적 맥락에서 이해하려는 시도를 통해, 도마복음의 기원과 사상적 배경을 밝히고, 도마복음이 신약정경이 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김기천 목사님의 분석은 도마복음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하며, 신학적 사고를 확장시키는 데 기여한다.
3. 결론
김기천 목사의 글은 도마복음이 신약정경에 포함되지 못한 이유를 심도 있게 분석하며, 이를 인도 종교의 맥락에서 해석하는 독창적인 시도를 보여준다. 불교와 힌두교 사상과의 비교를 통해 도마복음의 사상적 기원을 추적하고, 정경 형성 과정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도마복음의 위치를 재조명한다. 이 글은 독자들에게 도마복음에 대한 다각적인 시각을 제공하며, 신학적 사고의 폭을 넓혀준다.